사람은 정확한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향한 실천은 효율적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이는 목표가 자신을 이끌어 나간다는 주장으로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driven life)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편 다른 어떤 사람은 목적 없음이 이끄는 삶을 강조하기도 한다. 목적 없음이 이끄는 삶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이들은 대개 목표지향적인 성격과 과정 중심적인 성격의 조화를 주장하려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즉, ‘목적이 이끄는 삶’은 부성(父性)적, ‘목적 없음이 이끄는 삶’은 모성(母性)적으로 이해된다면 효율적인 행동을 위해서 누구에게나 이 두 개의 균형(均衡)이 필요한 것이다. 목적 없음이란, 마치 어린 양이 목자(牧子)의 울타리 안에서 만족하는 것과 같다. 결핍감(缺乏感)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의 사람들은 지금-여기 현실에 대하여 항상 감사하고 기뻐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꿈과 비전을 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늘 잉여욕망(剩餘欲望)의 충족을 위해 애쓰고 있다. 잉여는 나머지로 순화하는 뜻이다. 욕망은 인간의 살아있음의 증거로서 무언가를 가지려 간절히 바라며 결핍을 해소하기위해 충족의 대상을 향해 끝없이 쫓고 있는 것이다. 욕망은 환상 속에서 본 대상과 실제로 얻은 대상은 차이가 나는 무지개와 같으므로 또 다시 결핍된 상태로 돌아온다. 인간은 욕망을 포기하면 죽음이 오는 것이므로 욕망의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사물이 정상적으로 순환하도록 지켜 내야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효율적 행동의 지혜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첫째, 효율적 행동이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다. 효율적 행동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효율적 행동은 목표를 알맞게 설정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몰입(沒入)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정확한 잣대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을 효율적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가시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위해 달려가는 생활방식(life style)을 좋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마다 자신의 효율적 행동의 잣대를 분명히 인식(認識)하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사람마다 효율적인 행동의 잣대를 좀 더 분명하게 하는 방식에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먼저 사회흐름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가는 것을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대학 졸업 이후 대기업에 취업, 서른 이전에 작은 아파트라도 구입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예쁜 자식들 낳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면서 안정된 노후를 꿈꾸고, 가끔 해외여행도 하는 정도의 생활을 효율적 행동의 궁극적인 기준으로 삼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많지 않겠으나 영원(永遠) 차원을 생각하는 생활방식이다. 즉, 지구에서의 생활은 안개와 같이 사라질 일시적인 삶이라고 여기고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난 영적 존재로 여기면서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세계와의 사귐을 효율적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아무 생각 없이 모든 것을 운명 (運命)과 팔자(八字)로 여기면서 마치 망망대해(茫茫大海)에 떠다니는 돛도 없는 배처럼 유유자적(悠悠自適) 생활방식을 효율적 행동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경우이다.
효율적 행동은 철저하게 개별적 선택사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철학적 지혜는 신을 향하는 단계에서 거쳐야하는 단계는 나를 대면하고 자각하는 통찰의 '향자적(向自的)’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나 홀로 의인은 없으며 인간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영원 차원과 우주의 과학적 차원은 물론 팔자와 운명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므로 삶의 방향과 지표는 나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