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처럼 을지로 입구 길을 걸었다. 명동에서 볼일을 마치고 종로길로 접어들기 위해서였다.
며칠전이다. 11월 하순이지만 날이 청명하고 춥지 않아 종로3가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탈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명동입구에서 종각 방향으로 나아가 네거리를 건너 약간 가다보니 버스정류장이다. 바로 거기에 매우 낮익은 벽돌색 건물이 눈에 띈다.
2층규모로 주변의 고층 빌딩에 눌려 낮은 모습이지만 기품이 풍기는 건물이다. 우리은행 지점 간판이 보인다.
아~ 이 건물 아직도 그대로네...
50여년전 대학 다닐때 얼마나 마음을 졸이게 했던 건물인가? 당시 이 거리는 광교 또는 을지로 입구 라사점(양복점)거리로 불릴만큼 양복점들이 즐비했다. 거리 양쪽에 유명 양복점 20여개가 자리잡고 있었다.
서울 장안의 내노라 하는 멋쟁이들은 대부분 이 거리에서 양복을 맞춰입던 시절 얘기다. 양복점 사이 건물에 상업은행 종로지점, 광교쪽 큰 건물은 조흥은행 본점이었다.지금 광통교 모형다리가 있는 신한은행자리다.
1960년대 중반 서울의 각 대학들은 등록금 수납을 특정 은행 창구에서 받도록 했었다. 제가 다니던 중앙대는 이건물 1층에 있는 상업은행 종로지점이 수납창구였다.
이 무렵은 나라가 가난하고 대부분의 학생들도 형편이 어려웠다. 따라서 돈을 기한전에 미리 마련해서 여유있게 등록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마감날 오후에야 겨우 겨우 챙겨 이 건물에 들어있는 은행에 수납하고 영수증을 받아 길 건너 미도파 앞에서 흑석동 가는 버스를 타고 급히 학교 교무처에 들려 등록절차를 마무리 하곤 했다.
등록금 마감 날짜가 지나고 2차, 3차까지 연장해 주었는데도 돈을 마련치 못하면 다 팽겨치고 논산행을 택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저도 형편이 여의치 못해 등록금 마련하는데 몇 차례 애를 먹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결국 논산훈련소행을 택해 3년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학했었다.
이런 사연이 얽힌 건물이다. 문득 50여년 전을 회상해 보니 여러 생각이 떠 오른다. 그중 하나가 은행 이름이 바뀌게 된 사연이다. 당시 상업은행은 사라지고 대신 우리은행 지점이다. 은행이 바뀐 사연은 제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학교졸업후 신문사에 들어가 경제부기자로 한국은행과 금융단을 2년 남짓 출입했기에 은행에 얽힌 사연은 비교적 기억이 남아 있어 생각나는대로 적어 본다.
그 당시(70~80년대 포함) 주요 민간은행으로 가장 역사가 오랜 조흥은행, 가장 건실해 주가가 상위였던 한일은행, 주가 2위 제일은행, 서울신탁은행 등이 있었다. 특수은행으로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과 산업은행을 비롯 외환은행 주택은행, 서민은행인 국민은행, 기업전담 중소기업은행 등이 있었다.
그러던게 정권이 바뀌고 산업재편과 은행 통폐합이 이뤄지면서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한빛은행으로 통합되고 이어 뒤늦게 출범한 꼬마은행인 평화은행이 다시 합쳐져 우리은행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조흥은행은 나중에 출발한 신한은행에 흡수통합 되었고, 제일은행은 IMF를 거치면서 외국계로 주인이 바뀌었다.
특수은행중에서는 주택은행이 후일 출범한 장기신용은행(전신은 한국개발금융주식회사)과 함께 국민은행으로 통합된 것으로 기억된다.
불과 10여분 걸린 짧은 시간이었지만 50여년전의 여러 순간을 되돌아 보고 생각케하는 귀한 회상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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